
들어가며
최근 대법원은 신주발행과 주주평등의 원칙에 관한 주요한 판례들을 연이어 선고하였습니다. 공통적으로 상법상 종류주식의 일종인 전환상환우선주 혹은 같은 것이지만 표시되기에 따라서는 상환전환우선주(거래실무에서 통상 칭해지는 바에 따라 이하에서 ‘RCPS’라 합니다)상의 특정 약정조건(이 사건의 경우 증자 등의 특정 경영행위에 대한 사전통지, 사전동의권)이 유효한지가 문제되었습니다. RCPS는 벤처투자업계에서 빈번히 활용되는 신주(新株) 투자방식이다 보니 향후 투자거래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법원의 판결에 많은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모두 3건의 판결이고 유사하면서도 다른 사안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하나가 주주평등원칙에 관한 중요 판결들입니다. 따라서 어느 하나의 판결만을 볼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그 전후 의미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3회에 걸쳐 해당 판결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실관계 및 문제의 계약조건
이번에 살펴볼 사건은 ‘상환금청구의소’로 제기된 사건입니다.
피고는 컴퓨터시스템의 제조, 판매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입니다. 원고는 피고 회사와 일체형 컴퓨터를 개발, 생산하여 피고 회사에 판매하기로 하는 위탁생산계약을 체결하면서, 피고 회사가 새로 발행하는 RCPS 20만주를 인수하는 내용의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피고의 대주주 겸 대표이사도 ‘이해관계인’으로 계약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래서 대주주(별도로 지칭할 경우 ‘피고2’라 합니다)도 공동피고에 포함되었습니다.
해당 신주인수계약에는 투자금의 상환에 관한 특수한 조항이 포함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아래 조항의 내용은 이 사건의 하급심인 서울고등법원 2021. 10. 28. 선고 2020나2049059 판결의 사실인정 내용을 인용한 것입니다).
| 제21조(협의 및 동의사항) ① 피고 회사는 다음 각호의 사항에 대하여 원고의 사전 서면동의를 받아야 한다. 1. 원고의 투자 이후 피고 회사가 원고의 최종 주당 인수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유상증자, 특수사채(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를 포함하는 자본의 변동을 가져오는 모든 사채)를 발행하거나 피고 회사의 임직원에게 주식매입선택권을 부여하는 경우 9. 납입 자본금의 증가 또는 감소 제31조(주식매수의 청구 및 조기상환 청구) ① 투자금 납입 후 다음 각호의 사유가 발생하였을 시에는 원고는 서면으로 피고 회사 및 피고 2에게 계약 위반 사실을 통지하고, 피고 2에 대하여 원고 보유 피고 회사 주식에 대한 주식매수를 청구하거나, 피고 회사에 대하여 이 사건 주식의 조기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 이에 따른 위약벌의 산정 기준은 본 조 제2항에서 정한다. 1. 피고 회사 또는 피고 2가 이 사건 신주인수계약을 위반하고,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정요구가 있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위반사항이 시정되지 않은 경우 2. “회사”의 특수관계인, 관계회사, 제3자에 대한 투자, 제3자의 주식매입 또는 보증 3. “회사”의 중요재산을 취득, 매각 또는 양도하는 경우 4. 대표이사 변경 및 정관의 변경 5. 사업의 중단 또는 포기 6. 인수, 합병, 분할, 분사, 영업양수도, 경영권 변동, 화의, 워크아웃, 회사정리절차, 파산의 신청 등 기타 이에 준하는 것으로 “회사”의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 7. “회사”와 “이해관계인”, 주주, 임직원, 특수관계인 또는 이사 간의 거래 및 자금거래 8. 이익잉여금의 처분 9. 납입자본금의 증가 또는 감소 ② 피고 회사는 원고에게 위약벌로 다음 제1호와 제2호의 합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 1. 원고가 투자한 원금과 투자일로부터 피고 회사의 이 사건 주식 조기상환 완제일까지 연 7%의 금액을 가산한 금액 2. 기타 피고 회사 및 피고 2의 계약 불이행으로 인해 원고의 채권보전을 위해 지급한 제반 비용. 해당 비용은 피고 회사와 합의하에 결정한다. ③ 본 조 제1항에 의한 원고의 주식매수청구 및 조기상환 청구는 피고 회사 또는 피고 2에게 서면으로 하여야 하며, 피고 회사 또는 피고 2는 청구를 받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완제하여야 하며, 동 기간 내에 완제가 안 될 경우 그다음 날로부터 실제 완제일까지 연 15%의 비율로 지연손해금을 부담한다. 또한 조기상환 청구를 받은 경우 피고 회사와 피고 2는 연대하여 이행하도록 한다. |
요컨대, 피고는 원고에게 원고의 투자 이후 피고 회사가 원고의 최종 주당인수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유상증자 등을 하거나 납입 자본금의 증가 또는 감소 등 주요한 경영사항에 대하여 원고에게 사전에 통지하고 원고로부터 사전동의를 받아야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피고 회사가 원고에게 손해배상 명목으로 이 사건 주식에 대한 조기상환청구권 등을 부여하고 이에 더하여 위약벌을 부담하기로 하는 약정을 체결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피고 회사는 위 신주인수계약 체결 이후에 다른 투자자와 사이에 RCPS 인수계약을 2차에 걸쳐 체결하며 자금을 조달(증자)하였고, 그 과정에서 원고에게 사전 통지하거나 사전 동의를 받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의의 : 일반 법리의 제시
대법원은 주주평등의 원칙이 존중되어야 하는 중요원리로서 회사가 일부 주주에게만 우월한 권리나 이익을 부여하기로 하는 약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효라는 기존의 법리를 재차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에 관한 나름의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는 최초의 기준 제시라는 점에서 이 판결이 의의를 갖습니다.
먼저 차등적 취급을 허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차등적 취급의 구체적 내용, 회사가 차등적 취급을 하게 된 경위와 목적, 차등적 취급이 회사 및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였는지 여부와 정도, 일부 주주에 대한 차등적 취급이 상법 등 관계 법령에 근거를 두었는지 아니면 상법 등의 강행법규와 저촉되거나 채권자보다 후순위에 있는 주주로서의 본질적인 지위를 부정하는지 여부, 일부 주주에게 회사의 경영참여 및 감독과 관련하여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는 경우 그 권한 부여로 회사의 기관이 가지는 의사결정 권한을 제한하여 종국적으로 주주의 의결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비롯하여 차등적 취급에 따라 다른 주주가 입는 불이익의 내용과 정도, 개별 주주가 처분할 수 있는 사항에 관한 차등적 취급으로 불이익을 입게 되는 주주의 동의 여부와 전반적인 동의율, 그 밖에 회사의 상장 여부, 사업목적, 지배구조, 사업현황, 재무상태 등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일부 주주에게 우월적 권리나 이익을 부여하여 주주를 차등 취급하는 것이 주주와 회사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따져서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비추어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위 기준을 보면 이런 저런 고려할 사항이 적지 않습니다. 여러 요소와 제반사정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기준만으로는 여전히 모호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대법원은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사건 쟁점과 관련한 보다 구체적인 기준도 제시하였습니다. 신주의 인수대금의 필요성, 투자자를 위한 특수조건의 불가피성, 다른 주주의 손해나 불이익 가능성 등이 그것입니다.
회사가 자금조달을 위해 신주인수계약을 체결하면서 주주의 지위를 갖게 되는 자에게 회사의 의사결정에 대한 사전 동의를 받기로 약정한 경우 그 약정은 회사가 일부 주주에게만 우월한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주주들을 차등적으로 대우하는 것이지만, 주주가 납입하는 주식인수대금이 회사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금이었고 투자유치를 위해 해당 주주에게 회사의 의사결정에 대한 동의권을 부여하는 것이 불가피하였으며 그와 같은 동의권을 부여하더라도 다른 주주가 실질적․직접적인 손해나 불이익을 입지 않고 오히려 일부 주주에게 회사의 경영활동에 대한 감시의 기회를 제공하여 다른 주주와 회사에 이익이 되는 등으로 차등적 취급을 정당화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이를 허용할 수 있다.
따라서 1차적인 쟁점은 위와 같은 기준에 따라 해당 사안이 차등적 취급이 허용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는지에 있습니다.
그리고 2차적으로는 그러한 약정 위반에 대한 책임관계가 쟁점으로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대법원은 가령 약정위반에 대하여 손해배상약정을 체결해 둔 경우라면 그 약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효하다고 판단합니다. 이 사건은 위약벌이 문제되었는데, 대법원은 명시적이지 않기는 하지만, 이를 손해배상액의 약정으로 보아 부당히 과다할 경우 감액할 수 있다는 일반법리를 채택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의문이 하나 들 수 있습니다. 투자를 받은 회사가 신주인수계약을 위반하여 사전동의 없이 증자를 실행하였고, 그 위반에 대해 위약벌이 적용되도록 한 경우, 여전히 위약벌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대법원 판결은 이를 부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투자실무상 위약벌 조항은 약정의 이행강제력을 높이기 위해 자주 활용되는 수단입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판단에 의한다면 위약벌로 정한 금액을 전부 주장하는 것은 어렵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판결이 그간의 벤처투자 실무관행을 상당부분 인정하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안도하는 분위기도 많은 것으로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라고도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위 판결에 의하면 과도한 위약벌 조항은 재판 심리결과에 따라 일부 또는 상당부분이 감액될 수 있음을 유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위약벌 조항의 남용이라는 쟁점도 한번쯤은 다루어볼 주제이지만, 더 이상의 논의는 다음 기회로 하겠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판단
이 사건의 항소심은 제1심과 달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이 항소심 판결로 인해 그간의 실무관행이 완전히 깨지게 될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시장은 동요하였습니다.
항소심의 기초적인 판단근거는 종류주식 법정주의에 있었습니다. 상법이 종류주식에 관한 발행 기준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 사건 RCPS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 선 종류주식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특기할 만한 부분이고 한번쯤은 곱씹어 볼 필요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판시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고가 인수한 주식이 종류주식의 일종인 상환전환우선주로서 피고 회사가 발행한 다른 주식들과 그 종류와 내용이 다른 주식이기는 하나, 우리 상법 등 관계 법령상 주주에게 위와 같이 경영사항에 관한 사전 서면동의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주식 발행이 허용되어 있지 아니하므로, 이 사건 주식이 다른 주식과 그 내용이 다른 상환전환우선주라는 사정만으로 주주 중 1인에 불과한 원고에 대하여 위와 같이 차별적이고도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와 같은 쟁점은 간단히만 언급하고, 이 사건 신주발행에 차등 취급을 정당화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여부에 대한 심리에 보다 집중하였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 것(보다 정확히 보자면 '그럴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항소심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보고 파기환송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래서 실무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 사건의 실질적인 핵심은 ‘특별한 사정’의 인정여부에 있습니다. 이 사건 판결로써 벤처 투자실무관행이 유지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셈이기는 하지만, 실제 개별적인 사안에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가 될 것이고, 그래서 관련 실무에 종사한다면 ‘특별한 사정의 판단기준’에 특히 유의하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별한 사정의 판단기준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지 관하여 7가지 근거를 설시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여러 근거들을 보았을 때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결국 구체적인 판단이 필요한 셈입니다.
해당 판단기준에 따른다면, 1) 해당 신주발행 건에 대하여 다른 주주가 이의를 제기하였는지, 2) 이의를 제기할 여지나 가능성은 없는지, 3) 사전 동의 대상이 주주총회의 결의를 요하는 것인지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가능성도 열어 두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대법원도 결론을 단정하기보다는 “원심으로서는 피고 회사의 재무상황, 투자금 유치 내지 신주발행의 긴급성 내지 필요성, 원고와 피고들을 비롯하여 다른 주주들 상호간 이해관계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보다 면밀하게 심리한 다음 그에 따른 제반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였어야 한다”고 하여 다소 유보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국 이 사건의 최종 향방은 사실심(본 건의 경우 파기환송심)의 판단을 받아보아야 하는 측면이 다분해 보이고, 이러한 점은 이 사건 뿐만 아니라 향후의 다른 사건에서도 유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